긴 암울의 시기였다. 방랑자의 신, 간즈가 발을 디뎠다던 포밀러 대륙 동쪽에 비죽 튀어나온 라일룩 반도는 그 시기, 바다의 먹이로 자주 잠겼다. 사람들은 지대가 낮은 해안에 둑을 쌓고 높은 산 위에 집을 지었고 숲으로, 나무 위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그 시기를 아주 어린 나이에 맞닥뜨렸다. 많은 청년들이 바다에 휩쓸려가 바닷속 수인의 먹이가 되었다. 내가 ...
찬란한 해상 무역이 꽃피는 국가 게덴은 마지막 도시국가까지 합쳐 거대한 무역 국가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건 바깥사람들이나 아는 사실이었다. 알리그레 게미. 게덴의 팽창에 맞서 마지막까지 버텼던 도시국가의 왕이라고 전해졌던 여자를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게덴, 게덴. 정말 대단한 서 대륙의 지배자다. 알리그레는 구속된 손목을 흔들거렸다. 다신 칼을 쥐지 못...
긴 정적이었다. 라피오스는 침묵이 가져오는 싸한 냉기에 몸을 쓸었다. 어쩌면 정말 추운 걸지도 몰랐다. 그는 조금 전까지 전장을 뒹굴었고 에페가 쏴대는 얼음 마법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마인은 마법에 의한 피해를 느끼지 못한다. 라피오스는 제 드레스를 꽉 움켜쥐었다. 양치기 소녀들이 흔히 입을 법한 칙칙한 치마는 마법의 힘으로 지나치게 흰색이 되어버렸다. 라...
메이의 밤은 고요했다. 붉은 달은 축제의 막바지에 다다른 거리를 뜨겁게 비추었다. 루나 신의 딸, 메이. 차키온의 애인 메이. 붉은 달의 신 메이 아가씨. 엘노아라드의 흙을 단단히 틀어쥐고 자라나는 메일론 꽃문양이 새겨진 등 안에는 완전 연소가 된 푸르스름한 불이 작은 언어의 힘을 타고 터져 나와 등 안을 달궜다. 마법사들의 힘이 닿지 않는 곳까지 등은 멀...
칼날은 무엇을 담아내던가. 한 번 휘두르던 것을 멈출 수 있는가. 무언가를 베어야 한다면 나의 오만이었다. 너는 오만한 나를 죽이기 위해 왔구나. 이것이 나의 신념이라면 모두 그릇된 것일테다. 흘러가는 저 무심한 구름은 나 자신을 먼 세상으로 침잠시킨다. 너는 나를 보고 있고, 나는 너를 보고 있다. 너는 저 깊은 하늘을 담은 심연 속에서 왔을까. 손을 뻗...
용돈받는 날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아직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어려운 학생에게 월말마다 받는 용돈은 그달의 생계비나 다름없었다. 절반을 통장에 넣고 나머지 절반중 만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채 반쯤 지각한 학교에 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뛰쳐나왔다. 학교가 끝난 뒤 발걸음이 자연스래 향한 곳은 카페였다. 여전히 나의 인생과는 동떨어져보이는 그 장소에 대한 위화감에 ...
감정을 꽁꽁 마음 속에 가두는 것이 습관이 되어, 울어도 될 때에 울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서툴러서, 떠나가는 너에게 달콤한 말 하나 해주지 못했다. 난 끝나가는 사랑에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이 손가락에 얽혔다 얇은 실처럼 흩어질 어느 가을의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났다. 새삼스러우랴. 무언가가 그를 떠난다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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